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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7일 수요일

[대학문화] 대학문화가 새로운 청년문화의 거점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실천이 필요한지 생각해보자

2015년 현재 대학문화(大學文化)80·90년대의 대학문화에 비해 힘이 없다. 대학이 학생들에게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 예비 사회인으로서 경계 없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지 못하는 것에 그 원인이 있다. 최근 각종 미디어에서 보도되었던, 취업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대학평가를 보아도 현실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렇게 학생들에게 성공 취업을 주입하는 학교의 대학생들은, 문화적 자생력을 점점 잃고 있다.
 
   대학생이 만들어가는 대학문화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대학 진학률이 1인만큼, 대학생이 청년문화와 대중문화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청년문화는 문화적 다양성과 창조성을 통해 대중문화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현재 대한민국 청년들의 대학문화는 청년문화의 거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학문화가 새로운 청년문화의 거점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조직적, 주체적, 실천적인 문화를 지향해야 한다. 요즘 대학생들은 서로 잘 교류하지 않는다. 대학생활의 목적은 취업이고, 대학생 시절에 만나는 인연은 스쳐 간다는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 많은 탓이다. ‘대학친구라는 말이 따로 있는 것이 이러한 현상을 보여준다. 대학문화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대학생들이 서로 적극적으로 교류하여 하나의 유기체를 형성해야 한다. 딱딱한 관료주의적 조직이 아닌, 다양하고 복합적이지만 하나의 지향점을 가진 유기체를 조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대학생 스스로 마음을 열고 내 옆 사람에게 다가가려는 실천이 필요하다. 낯설고, 어색하지만 서로 대학문화의 구성원이라는 동질감을 느끼고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조직을 형성한 대학문화는 구체적 행동에 앞서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대학문화가 힘을 잃은 이유 중 하나는 대학생이 자본주의와 맞잡은 대학에 수동적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생은 주체적인 태도로 대학문화에 대해 서로 모여 치열하게 고민하고, 개선해 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대학문화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면 안 된다. 주체성을 갖고 자신감 있게 대학문화에 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체적으로 조직을 형성한 대학문화는 결국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 어떠한 모양이 되어도 좋으니 일단 행동을 해야 한다. 실패할 수도 있다. , , 고등학교 내내 교실에서 계속 책만 보았는데, 처음부터 어떤 행동을 잘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에 낙심하지 말고 문화의 구성원들이 서로 독려하며 꿋꿋이 행동해야한다.
 
이러한 행동의 예로 대학생이 주체로 기획하는 강연단을 들 수 있겠다. 강원대학교에는 나들이라는 강연단이 있다. 이 강연단은 강연의 기획부터 진행까지 강연단 구성원이 다 해결한다. 기회가 되어 나들이가 주최하는 강연에 가본 경험이 있다. 그 강연의 연사는 음표도 그릴 줄 모르는 음악가와, 자전거를 타고 유럽을 횡단한 대학생이었다. 두 연사 모두 공통적으로 청중에게 하는 말이 있었다. 무엇이든 그냥 일단 해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연사뿐 아니라 강연단을 기획하는 나들이구성원들도 청중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대학문화가 새로운 청년문화의 거점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행동해야 한다

[하위 문화] 현재 젊은 세대 사이에 유행하는 하위문화적 스타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출처: http://www.ban8.co.kr/shopimages/ban8/020000000232.jpg

재 신세대(新世代)라고 부를 수 있는 세대는 청년과 청소년 세대이다. 이들은 기성세대에게 저항하거나, 포섭(包攝)을 당한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들을 동일한 신세대라는 하나의 부류에 묶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청소년으로 대표되는 10대의 문화와 청년으로 대표되는 20대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과 청년의 하위문화적(下位文化的) 스타일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모두 가진다.
 
   먼저, 신세대라고 할 수 있는 청년과 청소년 세대의 공통점은 모바일(mobile) 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디지털(digital)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전 세계는 큰 변화를 겪었다. 기성세대 또한 이러한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모바일 기술이 급격하게 발달함에 따라 기성세대는 신세대와는 상대적으로 모바일 문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밥상에서 밥을 먹다가 휴대폰을 하는 자녀에게 혼을 내는 부모의 모습, 사람을 앞에 두고 휴대폰을 연신 두드리는 신세대를 이해 못 하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신세대의 행동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신세대의 행동을 낯설어하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바일 문화가 발달한 신세대를 부르는 단어가 있다.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 이다. 디지털 유목민의 특징은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신속하고, 단순하고, 개인적이다. 70·80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기성세대가 단합(團合), 단결(團結)’을 강조하는 것과는 반대로 이들은 개인적 관심사에 크게 반응한다. 이러한 특징이 이들의 하위문화적 스타일이다.
 
   디지털 유목민인 신세대는 언제 어디서나 자기의 관심사에 몰입한다. 대부분 정지 상태로 대중매체(mass media)를 소비하기보다 언제 어디서든지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의견을 공유한다. 특히 SNS상에서 기성세대에 대한 날 선 비판이 오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SNS상의 비판이 실제로 행동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적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예를 들어, 대학생 본인이 직접 불이익을 당하는 학과통폐합과 관련된 글에 좋아요(like) 버튼을 누르고 실제로는어떠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신세대 문화의 차이점은 청소년들이 청년보다 집단 내에서 문화적 다양성이 적고 기성세대에 순응하는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아이돌(idol) 팬클럽 문화이다. 팬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낸 아이돌을 다양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광적(狂的)으로 소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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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기업화] 문화 기업화와 사유화의 긍정적인 방향은?

출처: http://static1.allkpop.com/upload/2014/10/af_org/misc_1413994273_af_org.jpg

(文化) 기업화(企業化)와 사유화(私有化)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다. 최근에는 문화와 문화산업(文化産業)을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이 현상의 원인은 산업과 사회의 여러 가지 변화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消費)’하는 음악, 영화, 대중매체(mass media)와 같은 대부분 문화는 기업화와 사유화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직면한 현상이며,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 흐름은 문화적 다양성의 파괴, 물질만능주의 조장, 지배계층의 지배 정당화 등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들이 나타나는 이유는 문화 기업화와 사유화의 중심에 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가치는 그 자체로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사회변혁의 실천을 도모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에 있는데, 사실 이러한 것들은 과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람직한 문화를 위해 앞으로 계속 진행될 문화 기업화와 사유화의 긍정적인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문화 기업화와 사유화의 긍정적인 방향은 '문화의 본질적인 가치 실현이다. 문화 공급자와 수용자 모두의 노력을 통해 실현 가능하다. 이를 위해 문화의 방향과 목적지를 이 아닌 다른 곳에 두어야 한다.
 
   먼저, 문화 공급자에 대해 알아보면 문화 공급자는 첫 번째로 기업가 정신을 함양해야 한다. 기업가 정신에는 많은 뜻이 내포되어있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위험(risk)을 감수하는 도전 정신이다. 두 번째로 문화 공급자는 창조적 생산을 위한 자본 재투자를 아낌없이 해야 한다. 이는 기업가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어느 정도 위험(risk)이 존재하지만 창조적 생산이야말로 장기적으로 문화의 가치 실현을 달성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문화 공급자는 사회적 목적의식을 함양해야 한다. 문화산업을 통해 사회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문화 공급자는 이를 사회에 환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의무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사회적 목적의식의 함양과 이를 실제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문화 수용자는 이러한 공급자의 긍정적인 방향에 발맞추어, 주체적 문화 수용태도를 먼저 함양해야 한다. 수용자 스스로 대중문화가 주는 달콤함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문화를 선택적,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문화 수용자는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는 열린 태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문화 공급자가 다양한 문화를 공급했을 때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수용자가 없다면 결국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문화 수용자는 소규모 문화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문화산업에서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작은 소규모 문화는 자연스레 수용자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이에 따라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화 수용자가 먼저 이러한 소규모 문화에 관해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소비하려고 한다면, 여러 소규모 문화들이 모여 문화적 다양성을 실현하고 나아가 문화의 본질적인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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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문화] 대중은 능동적인가, 수동적인가?

(大衆)이 능동적인지, 수동적인지 정의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볼 것이 있다. ‘대중이라는 단어의 의미이다. 이는 의미를 통해 자연스럽게 대중의 성질에 대해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을 한두 개의 단어로 규정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역사적 피지배 계층을 뜻하는 민중(people)과 지배계층이 아닌 일반인을 뜻하는 평민(mass)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대중은 사회의 지배계층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포괄적인 의미에서 지배계층 또한 대중에 속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대중은 지배계층이 아닌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것으로 보아 대중지배계층이 아닌 사람들이다. 어떠한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을 대중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이 대중은 일반적인 사람들을 만족하게 하는 어떠한 구조나, 체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순응한다는 점에서 수동적이다. 과거에 명시된 제도(制度)나 신분(身分)에 의해 지배당했던 대중의 모습, 현대에 들어서며 자본(資本)이라는 새로운 사회구조에 의해 지배당하는 대중의 모습이 이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대중이 과연 수동적인가에 대해 의심을 해볼 필요는 있다. 현대사회는 신분에 의해 불합리한 차별이 없고, 오히려 시민의식 향상과 기술 발달로 인해 시민 개개인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마련되어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SNS(social network service)로 인해 대중은 모바일(mobile)을 통해 자유롭게 의견을 게시하고, 정부에 대한 비판 또한 자유롭게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SNS가 오히려 대중들의 수동적인 모습을 더욱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파급력을 가진 SNS페이스북(Facebook)을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 이용자(user)들은 뉴스피드(news feed)를 통해 세상을 본다. 이용자가 생산한 콘텐츠(contents) 또한 이 뉴스피드를 통해 퍼져나간다. 이 뉴스피드에는 소소한 일상부터 지배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정부와 자본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도 오간다. 이용자들은 여기서 만족감을 느끼고, 현실 세계에서 느끼지 못한 해방감을 경험한다.
 
   하지만 뉴스피드는 페이스북이라는 초국가적 거대기업이 개인에게 주는 먹이(feed)이다. 이 먹이 속에는 이용자들의 의견과 기업의 광고들이 혼재되어있다.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개개인은 능동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할 수 있지만, 결국 구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대중은 페이스북에 의해 마취(narcotization)를 당하고 있다. 대중이 적극적으로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동안 페이스북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토대로 상상할 수 없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국 대중이 수동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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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론] 구조주의와 문화주의의 차이는 어떤 것인가?

출처 : http://cnx.org/resources/70bbb0feab0bb06946eb9cf989d22e930e83c7f1/Figure_04_02_02a.jpg




조주의와 문화주의는 대중문화의 주체(主體)’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 구조주의 관점에서 본 대중문화의 주체는 구조(structure)’이고, 문화주의 관점에서 본 대중문화의 주체는 인간(人間)’이다. 이처럼 대중문화의 주체에 대한 엇갈린 견해는 문화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이어진다.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문화의 생성과 소멸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구조이다. 대중문화라는 표피(表皮)적 현상 저변에, 숨어있는 구조가 있다는 것이다. 구조주의는 구조가 실질적으로 대중문화의 생성과 소멸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였다. 특히,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라는 구조가 자본주의 지배체제를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자본주의에서는 대중매체(mass media)의 여러 가지 소구(訴求)를 통해 많은 사람이 소비를 한다. 또한, 어떠한 제품은 구매를 통해서 개인의 주체성을 완성해주는 것과 같은 느낌을 들게 해준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자본주의의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문화주의적 관점에서 문화의 생성과 소멸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회에서 생성된 문화그 자체이다. 이들은 어떠한 사회의 구조적인 맥락보다, 인간의 실천적 경험을 통한 문화형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구조주의에서는 이러한 경험이데올로기(ideology)를 통해 구성되는 환상적인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이들 문화주의는 정통 마르크스를 부인하며 문화는 단순히 토대로서의 결과물이 아니고, 문화가 물질적 토대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하였다.
 
   문화주의에서는 바람직한 문화를 1930년대 노동계급문화로 보았다. 이는 노동계층에서 각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형성한 문화이다. 여기서 노동자들은 문화를 능동적으로 생산하는 주체이다. 또한, 이러한 주체성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실천적 경험을 통해 노동계급이라는 계급적 영역을 스스로 구축해 나갔다. 하지만 문화주의 역시 대중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그것은 대량생산된 매스미디어인데, 문화주의에서는 이러한 매스미디어가 주체적인 문화를 위협하고 해체한다고 주장한다.
 
   구조주의와 문화주의 모두 각각 이론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구조주의는 문화에 있어서 구조가 갖는 의미를 부각하는 한편,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 개개인을 수동적인 객체로 전락시켰다. 이러한 의미에서 구조주의 속 인간은 주체성을 상실하고, 잠재적 사회변혁의 주체로서의 활동이 어렵다고 할 수 있다문화주의는 인간의 능동적인 실천에 높은 의미를 부여했다. 이는 사회변혁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인 활동을 장려하여 다양한 문화를 생산하고 확산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헤게모니를 통한 투쟁적 문화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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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문화] 대중문화는 동질적인 하나의 문화인가, 아니면 다양한 문화들의 집합인가?

출처 : http://imgjungle.jungle.co.kr/Magazine/up_img/category/hy080103_sp_image001.jpg



중문화(大衆文化)에 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이 글에서 다룰 대중문화는 대중이 이루는 문화이다. 그렇다면 대중문화에서의 대중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일종의 집합체(集合體)’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편의상 대중을 정의하긴 하지만 대중이란, 서로 다른 개개인이 속해있는 복잡한 부류임은 틀림없다. 이렇게 복잡한 대중이 이루는 문화인 대중문화는 아마 대중만큼이나 복잡할 것이다. , 대중문화는 동질적인 하나의 문화라기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들의 집합인 것이다.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헤게모니(hegemony) 개념에 따르면, 지배계급은 사회를 강압적인 힘만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지적 리더십을 통해 이끌어간다. 도덕적·지적 리더십이란, 피지배계층이 다양한 문화적 형식을 통해 지배계층의 지배에 대해 동의(同意)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동의의 이면에는 사회단체·정당 등 다양한 시민사회 형식의 발달이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민들은 이러한 시민사회의 구조(structure)적인 대중문화에 있어서 언제나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진 않는다. 이들은 비록 지배에 대해 동의를 하지만, 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문화를 해석하고, 서로 다른 문화를 재생산한다. 이러한 모습은 사회를 구성하는 각 계층 간의 차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것이 대중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다양한 계층들 사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위문화(下位文化)’의 생성이다. 이는 대중문화의 다양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로 특정 계층에서 생성되는 하위문화는 지배문화에 대한 저항과 투쟁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하위문화는 하위문화에 머무르지 않고, 자본가와 결합해 또 하나의 거대한 대중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미국 흑인가의 골목에서 시작해서 빌보드 차트까지 진출한 힙합(hip hop)’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힙합이 태동할 당시, 80년대 미국사회에서의 흑인은 사회적 약자였다. ‘힙합은 당시 흑인들의 삶의 방식이었고, 이들은 힙합을 통해 삶을 표현했다. 그래서 본래 힙합은 다소 거칠고 투박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힙합이라는 문화를 통해 흑인 거리문화(street culture)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갔고, 사회에 대한 날 선 비판도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 결과 힙합은 그 나름의 철학적, 문학적 가치를 갖게 되었다. 또한, 미국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개방적인 문화가 확장됨에 따라 힙합 또한 대중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제는 대중문화가 되어버린 힙합을, 80년대 흑인들 사이에서 태동(胎動)한 힙합을 우리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길거리에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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